디파티드

영화 2007. 9. 1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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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에 대한 수많은 악평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단하나다. 오락영화로서 대단히 신나다는거에 있다. 물론 여러구석에서 찔러들어가면 흠잡힐데가 꽤 있는 영화지만 흔히들 상업영화나 오락영화에는 조금은 관대하지 않나. 넓은아량으로 조금만 숙이고 들어간다면야 그럭저럭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그럭저럭이라는 단서가 붙는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수많은 악평이 난무할만큼 최악의 영화는 아니란 소리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 무간도를 몹시도 아끼지만 최대한 디파티드의 손을들어주며 글을 써나가기로 했다.


1. 갱 VS 삼합회

디파티드가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이라는건 두말하면 입아플 정도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서 디파티드가 무간도와는 전혀다른 호흡으로 진행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띄어놓고 보기 힘들다. 물론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긴 하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리메이크작을 본다면 사실 조금은 염치 없는 짓이 아닐까한다. 차라리 리메이크작은 어떠한 다른 세상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까 정도로 기대하는게 영화를 훨씬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무간도와 비교하여 흠찾기 보다는 두 영화의 차이부터 찾아보기로 할텐데 의외로 간단하다.
두 영화가 표현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갱과 삼합회의 차이만큼 마틴스콜세지와 유위강의 조폭세계에 대한 이해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다면 마틴스콜세지의 전작은 거의 접해보지 않았을뿐더러 유위강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만큼의 후속작도 내놓지 않았기에 작품세계 비교가 자세히 들어가기에 어렵다) 흔히들 두 영화를 비교하며 무간도의 간지를 조금도 표현하지 못한 디파티드는 저평가 되고 있는데 사실 디파티드가 간지날 필요는 없다. 쥐새끼들이 사는 시궁창이 간지날리 없지 않은가. 미국의 뒷골목과 홍콩의 뒷골목이 가지는 아우라 자체가 다를뿐더라 그 둘을 비교하여 우위를 가리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짓이지 않는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각 뒷골목을 가지고 영화적 틀안에서 어떤 매력을 비춰줄것 이냐가 관건인것이다.  그런면에서 볼때에서야 드디어 디파티드와 무간도의 매력과 힘이 갈린다고 보여질 것이다.


2. 이중스파이의 노고 VS 쥐새끼들의 시궁창

무간도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탄탄한 플롯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섬세한 감정선일 것이다. 반면에 디파티드는 인물들간의 섬세한 감정과 관계보다는 개개인의 욕망에 더 촛점을 맞춘다. 영화내내 징글맞게도 등장하는 쥐새끼라는 대사속의 단어처럼 비열한 뒷골목의 쥐새끼라는걸 드러내기위해 2시간 40여분여를 쉼없이 달리는 이 호흡이 디파티드의 강점이다. 그렇기에 디파티드가 돋보이는 점의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의 끊임없는 고뇌가 아니라 영화 중반전까지 쉼없이 몰아붙이는 편집에 있다. 특히나 영화 도입부의 간결하면서도 쉼없이 몰아붙이는 그 에너지는 폭발적이다. 하지만 중반이후부터 폭발적인 에너지는 정당성을 잃어버리면서 시들시들해져버린다. 여기서 무간도가 완전한 영화가 아님에도 디파티드가 상대적으로 밀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골목의 매력은 충분히 느꼈으니 그 골목안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는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저 쥐새끼들의 먹이다툼만을 보려고 디파티드를 선택한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먹이다툼의 이유가 궁금했을 따름이다. 그런면에서 볼때 굳이 디파티드가 무간도의 위장신분과 잠입이라는 이중스파이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필요가 있나 의문스러워진다. 좋은친구들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뒷골목을 보여주었건만 굳이 홍콩 뒷골목의 의리를 빌려와야 했나싶다. 그렇기에 여전히 아쉬우면서 찜찜한거다. 마틴스콜세지식의 갱은 뒷골목에서 무슨일을 벌이고 있나 궁금한거다. 홍콩 뒷골목에 비하면 훨씬 투박하고 화끈할 이 뒷골목이 마틴스콜세지의 전작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3. 간지폭발영상 VS 에너자이저편집
(사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에 이 부분에선 말이 적어질 수 밖에 없으니 이해해달라)

무간도가 가장 멋들어진 점은 그런 이중스파이의 노고가 영상에 잘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새파랗게 높은 하늘을 배경으로 옥상에서 맞딱뜨린 양조위와 유덕화의 장면은 긴장감과 함께 그들의 노고가 드러난다. 느릿하게 재생되는 황국장의 죽음(디파티드에서는 몹시 빠르고 대단치않은듯한 느낌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것 같던데 사실 그 감독 입장에서 황국장 자체가 주인공 캐릭터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래봤자 어디까지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처지를 위해 살아남으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의미일것 같다), 어디선가 구슬피 들리는 음악. 캐릭터와 캐릭터가 부닥칠때마다 드러나는 음악과 영상은 긴장감과 더불어 어디선가 봤을법한 간지가 느껴진다. 홍콩느와르 영화 특유의 각잡힌 간지를 잘드러내졌다는 말이다. 반면에 디파티드의 강점은 빠른편집으로 힘있게 내달리는데 있다. 느릿하고 우울한 곡조의 음악보다는 경쾌하고 힘있게 내달리는 음악에 어딘지 모를 구리고도 투박한 화면으로 빠르게 내달리는 디파티드에서는 커다란 힘이 느껴진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각잡힌 간지캐릭터의 이야기냐 찌질하고도 천박하면서 음란한 캐릭터의 이야기냐가 이 영화들의 호불호를 가르는 가장 큰 관건일텐데 의외로 가볍게 갈린다. 그러니깐 그건 다 취향탓이라는 거다. 찌질한것도 좋아하고 각잡힌 것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둘다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지만 그래도 조금더 손을 들어주고 싶은 영화는 무간도다. 어쨌든 양조위의 눈빛을 따라할자는 그리 많지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맷데이먼의 찌질함과 천박함이 절대 밑에 있다는건 아니다. 그저 양조위의 눈빛이 조금더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는편이 좋겠다.
고로 결론은 연출따위 필요없이 그냥 잘생긴 남자배우에 홀렸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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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토론보고 진중권씨 말처럼 꼭지돌아 두다다 써내려가다 짜증나고 한심해서 때려쳤다.
CG시연회, 한없이 투명한 그림, 기본플롯조차 엉성해 영화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디워.(라는 투로 누군가가 말했던것 같다)
더이상 할말없다. 평론가나 감독이나 영화관계자들 심지어 진중권씨까지 포함하여 왜들 그렇게 까대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없는 영화 재미없다고 말한것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왜 재미없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줬는데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이 고작 하는일이라고는 열내다 두팔 걷어부치고 블로그 폭파시키고 난동부리는 것이다. 이건 거의 야만적이고도 일방적인 폭력적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논의가 이뤄지질 않는다. 한영화에 대해 이렇게도 천편일률적인 반응을 보이는게 오히려 더 위험한거 아닌가? 이건 뭐 통제사회도 아닐텐데 이리도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게 참으로 무섭다.
머리에 열좀 식히고 생각해보자. 재미있었으면 왜재미있었는지 평론가들이 입도 뻥끗못하게 논거를 가지고 말해봐라. 그사람들은 후진영화 재미있게 봤다고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정신차리고 냉정하게 영화를 보자는거다 .
제발 영화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영화 후지다 말했다고 난동부리는 게 더 후져보인다. 제발 그런거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엄한 평론가들 입도 뻥끗 못하게 만들어 청년실업이 극에 달한 이 시점에서 실업자 늘려 취업경쟁률 부추기는 짓말고 생산적인 담론이 이뤄지길 바란다.



>> 제가 관련글들을 찾아보다가 홧김에 때려쳤는데 다시 찾아서 찬찬히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을것 같으니 혹여 상황이 변하였다거나 잘못이해한 부분에 대한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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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집은 그저그런 슬래셔무비입니다. 싸이코패스가 나오긴 하지만 감독은 깊이있는 고찰은 커녕 일반살인마와 다를바없이 그저 찌르기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 그려버립니다. 게다가 황정민의 어리숙한 착함은 결국 덜떨어짐으로 치부돼 변화를 촉구하지요. 세상에 숨어든 싸이코패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해답을 안겨주고 떠나간 영화 검은집은 참으로 기분이 나쁩니다.

2.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베이씨표 영화는 이제 도저히 눈뜨고 보기에는 힘들지경까지 왔습니다. 뇌에 인식되기 전에 휙휙 지나가버리는 컷덕분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남는거라고는 간지대장로봇 프라임의 귀여움과 메가트론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정도입니다. 이건 재미있는건지 재미있는 척을 한건지 도저히 구분못할 상황이지요. 돈지랄의 대가 베이씨의 영화는 이제 더이상 재미있는척도 안되는듯 합니다. 아님 제안구의 운동력이 떨어진건가요? 게다가 마지막 본네뜨위에서 뜨거운 몸짓을 위해 부비적대고 있는 남녀를 뒤로하고 석양을 보며 진지하게 치는 간지대장 프라임의 대사는 저절로 몸이 베베 꽈지게 만들더군요. 어떤 의미로는 대단합니다.

3. 과거, 현재, 미래의 의사들이 모여있는 곳, 해부학교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마지막에 빵하고 터져서 긴급수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봉합이 안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어정쩡하게 끝나버린 영화덕분에 약간 찝찝한면도 없잖아 있지만 극중 한지민씨가 맡았던 선화의 꿈속은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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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집

영화 2007. 6. 26. 01:29

검은집이 불편한 이유는 감독의 이율배반적인 태도 덕분이다. 알아보니 원작 소설 또한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엿보인다는데 영화는 그 점을 충실히 따라오는가보다. 주인공을 통해 논리가 필요없는 싸이코패스를 사람으로 보자는 의견과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주목하는 싸이코패스의 괴물성에 대해서 심도깊은 논의보다는 얕은 고민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사회 메커니즘의 기본 전제인 인강성에 대해서 좀더 깊은 고민을 하길 바랬건만 감독은 고작 도출해낸 결론이 싸이코패스는 부정적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이해불가결한 타자이기에 응당 소외시킬만 하다는거다. 물론 살인을 서슴없이 행하는 범죄자마저 껴안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사회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모색할 줄 알았다. 이방인인양 사회적 추방을 볼려고 이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런면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이 영화는 그렇기에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공포영화의 장르적 법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지루함을 견뎌내게 하지만 중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전형적인 신체훼손의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나 중심적 이야기를 너무 빨리 드러냄으로서 관객의 맥이 풀리게 할 뿐만 아니라 고의적인 신체훼손의 장면은 구토까지 일게한다.
게다가 황정민씨 연기는 대단치않다. 이것참. 매년 여름마다 실망하면서도 한가닥 희망의 실마리를 잡고 공포영화를 보지만 매해 같은일을 반복한다. 더이상 고문을 통한 신체훼손 공포영화는 관객들에게 감흥을 주지못할테다. 말초신경을 자극할 순간적인 비쥬얼보다는 서서히 조여들어오는 공포영화 한편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연출이 돋보이는 한국공포영화가 이제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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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를 켜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에리히 프롬의『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하면 사랑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사랑은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본질은 잃어버리고 물질만 바라는 현대인에게서 더 이상 사랑은 찾아볼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걸까?

영화 파니핑크는 사랑에 대해 의미있는 답변을 제공한다. 사랑받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파니를 통해 현대인을 투영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의 고독과 정체성, 그리고 세상을 껴안으며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파니핑크는 현대인의 삶에서 더 이상 사랑이 무의미한게 아니라 찌들고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수단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맺음으로서 이어지는 감정 또한 사랑이라 말한다. 즉, 자신들의 공간안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사랑을 외치는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잘표현한 모리스 도리 감독의 파니핑크는 낯선 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조차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조금은 위안이 되는 그런영화이다.




1. Nobody Loves Me, Keiner Liebt Mich(원제 :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영화 파니핑크는 파니의 카메라 앞에선 파니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카메라 한가득 잡혀있는 파니의 표정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표정이다. 결혼정보회사의 카메를 통해 지독히도 냉랭한 말을 내뱉는 파니에게서는 더 이상 사랑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30세 이상의 여성에게서 남자를 만나는건 원자폭탄 맞는것보다 더 힘들다는 파니는 여자의 행복에 남자가 꼭 필요한건 아니라는 아이러니한 대사를 읆조린다.

슬픈눈과 지친표정을 번갈아가며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속의 파니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검은색으로 휘어싸인 옷차림으로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 토로한다. 한편으로는 남자에 대한 열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지만 한편으로 외로움에 누군가의 손길 또한 그리워하는 파니의 모습은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저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왜 스스로 “나 자신도 날 사랑하는건 힘들 것 같아요”라는 내뱉을 정도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을까?




영화 첫시퀀스의 파니의 모습은 현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장면이다. 낯선사람들 속에서 상처받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자신을 고립시키지만 결국엔 그 외로움에 견디다 못하는 파니에게선 누구나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에게서나 사랑받지 못할거라는 외로움과 두려움과 끔직함 속에서 이러저러한 변명을 가져다 붙이기에 급급한 파니는 사실 배우자를 원한다기 보다 인생의 변화를 줄 누군가의 손길을 원하는게 아니었을까한다. 즉,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를 고대한 것이다.




2. 죽음의 이미지


“내 삶이 레코드 판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한 줄 한 줄씩..내 자신이 그걸 느껴요. 레코드 바늘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끝 부분? 중간 쯤? 아니면 지금 이미 끝난 건지도 모르죠...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파니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는 파니의 감성만큼이나 황폐하고 냉랭하다. 낙서로 가득채워진 벽과 푸른빛이 감도는 어두운 조명아래 있는 아파트, 그리고 온통 커텐으로 드리워진 파니의 방. 거기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닌 이웃들은 황량하고 기괴스럽기 그지없다. 다양한 삶들의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아파트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는 파니에게 있어서 거주의 공간은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니라 무덤과도 같이 죽어있는 공간이다. 더 이상의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된 공간에서 파니는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란 모임에서 만들어 놓은 관을 방안에까지 가져다놓는 자기파괴적 행위를 통해 어떠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오히려 참담한 쓸쓸함만 더욱더 가중될 뿐이다.




폐쇄적인 생활방식으로 인해 참담한 죽음에 직면하게 된 파니에게서 삶을 견디어 내는건 그저 관안에 누워 조용히 읆조리며 죽음을 곱씹는 것 뿐이다. 사방이 막혀있는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는 파니에게서 죽음은 어쩌면 새로운 삶으로의 희망이 아닐까 한다.




3. 점령술사 오르페오


"봐, 넌 그게 문제야. 없는 것이나 불가능한 것, 반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불평,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넌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잖아. 일, 집, 가족, 좋은 피부색, 그런데 대체 뭘 더 바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파니에게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파니의 운명은 바뀌어진다. 사방이 꽉 막힌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있어서 특별한 인물이다.



점령술사라고 소개한 오르페오는 어떤 주술적인 힘으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인다. 아파트 관리자의 도움을 받는게 아니라 오르페오의 주술적 힘을 통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것이다. 물질문명, 이성적인 문명, 문화의 도움보다는 문화 저너머의 어떤 주술적, 마법같은 감성적 힘을 통해 파니의 닫힌 마음을 스르르 열어버린 오르페오는 어쩌면 파니의 긍정적 자신일 수도 있고 주위에 존재하는 따듯한 마음의 이웃일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을 닮은 이 친구는 흑인에다 동성애자이며 뺀질뺀질한 사기꾼이다. 백인사회에서 험난한 인생을 살았을게 뻔히 보이는 이 점령술사는 조금은 슬퍼보이지만 여전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스스로 소외됨을 유도한 파니를 꾸짖으며  관계맺기에 서투른 파니에게 “누굴 위해서 한 번이라도 자신을 희생해 본 적 있어? 항상 자신만 생각하지?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지.”라고 말하며 파니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오르페오를 통해 소통을 시작한 파니는 이제야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30대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사랑스럽게 웃을줄 알게 된다.




4. 사랑과 희망, 그리고 삶


"겁내지마, 과거는 뒤에 있는 너의 모습이고, 미래는 앞에 있는 너의 모습이야. 과거와 미래는 항상 너와 함께 하는거야. 그것이 가끔 널 유혹할거야. 잠시 앉아 쉬라고, 휴식을 취하라고..네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약속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 말 듣지마. 계속 앞만 보고 걸어가. 그리고 시계는 차지마. 항상 몇 시인지만 알리려고 하니깐..그 보다는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 알겠지?"




현대인의 소외감을 세밀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영화 파니핑크는 오르페오의 죽음과 파니의 변화로 끝을맺는다. 창밖으로 관을 버림으로서 그동안의 사랑할 줄 모르는 마음을 버림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파니는 타인과의 만남이 자기사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영화 초반의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웃들이 파니가 주최한 파티 속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따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르페오 한 사람이 전해준 파니의 변화가 타인과의 삶속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준 마지막 장면에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삶에서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어쩌면은 타인과의 만남속에서 조금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먼저 배운 파니가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닮은 남성에게 과감하게 다가감으로서 새로운 사랑으로의 도약을 이뤄냈다. 누구나가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실수하고 상처받지만 자기애를 통해 두려움과 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장면장면에 흐르는 에디뜨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야,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의 선율에서는 다짐과도 같은 결의가 보인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있으며 누구나가 변화할 수 있는 희망의 다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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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지아니한가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영화였다. 무덤덤하기에는 너무도 냉소적인 그들네 가족이 현실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위로도 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가족들이 외면한 뒷통수가 사라지는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외면하고 냉소적이면 어떠리. 시작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기로하자.
봉테일에 이은 정테일 덕분에 영화적 해석의 범위는 의외로 넓다. 개인적으로는 무덤덤보다는 냉소적임에 더 힘을 뒀지만 해석의 몫은 관객들.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 말해주지마오.

2. 일루셔니스트는 로맨스라고 결론짓기에는 너무 심심하다. 노리끼리하고 부한 화면에 마치 뭔가 있는마냥 분위기 잡아가다가 간단하게 결론지어버린 심심한 영화. 그냥 제목답게 모든건 일루션이라고 결론짓는게 엽기적이더라도 차라리 더 재미나다. 진실이 아닐지라도 심심하게 결론내리기에는 너무 분위기 잡아 의심가는 영화. 폴지아메티와 에드워드노튼의 캐릭터 연기는 너무도 완벽해서 누가 진실인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알다가도 모를일.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가?

3. 300은 제목그대로 300명의 미중년 복근군들이 후까시 가득잡고 2시간 내내 판치는 영화. 화면만 때깔나면 뭐하리요. 스토리와 주요캐릭터의 해석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엿볼수 없는데. 그냥 똥폼잡는 복근군들의 복근에 환호하면 그만일것을. 빤츄에 빨간망토만 걸치고 코스프레하면서 똥폼잡으면 어떠하리. 감탄할만한 복근탓에 마지막장면에서는 그 감탄할만한 복근에 살짝 짜릿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 판타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냥저냥 즐기자. 정치적 해석에 박차를 가하기에는 조금은 미진한 스토리를 망각하지 말고.
그렇지만 역시나 영화는 관객 해석이 재미난법. 사견을 조금만 덧붙여보자면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이유는 비슷하구나. 창칼로 한것인가 최첨단무기로 한것인가의 차이일뿐. 국제뉴스를 틀면 비슷한 양상의 싸움이 매번 반복되는걸 느낄터이다. 그렇다면 스파르타(미국)가 말하는 자유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아님 페르시아(미국)가 주장하는 절대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걸이란 말인가?

--- 성게군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같은 스파르타인이라도 왕이 말하는건 정말 다르더군요. 레오니다스왕이 스파르타라고 외칠때 저도 모르는사이에 외칠뻔했달까요. 그렇기에 결론은 고함치는 리더가 존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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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2편 추천합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고래의 도약인데 너무나도 예쁜영화들이에요. 짧은 시간에 장편영화 못지않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단편영화들입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 김종관(6분 26초)

폴라로이드 사진이 현상되는 조마조마한 순간을 기다리듯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조마조마한 첫사랑.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첫사랑의 풋풋함을 간직한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엉큼한 카메라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영화속에서의 정유미씨는 여전히 예쁘다. 첫사랑에 살풋이 떨리는 눈동자라던지 발그레해지는 볼이라던지 허둥대는 손짓이라던지. 첫사랑을 하는 예쁜 유미씨가 영화내내 등장!

좋아한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력하다. 슬프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운다.






고래의 도약 - 타무라시게루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 예쁜 색감과 독특한 그림체, 그리고 슬픈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신비한 영화.
우리의 기억속 깊은곳에 존재하는 유리바다. 현실에서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움직임이지만 모든것이 멈춘듯 느리게 움직이는 그곳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을 회상할 수 있다. 기억저편의 배를타고 멈춰버린 태엽을 감듯 여행하는 곳 유리바다.
여러분들도 단지 기쁨의 유리방울이 가득한 곳을 오늘밤에라도 여행해보시기를...

바다위에서 불을 피우면 바다에서 워터피플(Water People)이 나타나 신비한 선율을 노래했다
뚫어진 몸안에 은색의 물고기에 끌려 춤추듯이 헤엄쳐요.



>>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고화질 영상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고래의 도약의 경우에는 디비디가 나와있으니 직접 구매하셔도 되겠지만 어둠의 경로로도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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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과 2001년에 MTV에 화제속에서 방영되었던 프로로서 스턴트맨의 엽기적인 행동들을 모아 만든 영화가 잭애스다. 아주 골때리는 영화로서 엽기행동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유재석과 친구들의 무(모)한 도전은 새발에 낀 때만도 못하다는걸 느끼게 된다.
무모한 도전이란 바로 이러한 것, 엽기적인 행동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 보는 내내 이들의 위험천만한 엽기행각에 웃음이 나온다. 물론 멈칫하고는 '웃어도 되나'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웃긴걸 어떻하나. 그런 생각을 잊어버릴만큼 웃음이 나온다.


스토리도 없고 오로지 엽기행각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로서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잘피해가면서 봐야한다.
하지만 뻔뻔할 정도로 노골적인 이들의 행위때문에 웃지 않고는 못배긴다. 몹시도 가볍기 그지없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진지하지 못할바에는 무겁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미친듯이 가볍고 노골적인게 낫지않나? 괜히 뭔가를 기대하지 말고 생각없이 웃기만 하면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 이 한마디만 외치면 된다.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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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대한 심각한 스포일러가 내포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잘보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건 매우 죄스런 일이다. 많은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가 단 한마디로 표현된다면 그는 무척이나 박학다식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영화에 대해 안체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난 오늘 그 아는체 하는 사람이 될까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람이라고 내딴에는 생각한다. 전작 메멘토로 인해 천재감독이라는 어마어마한 호칭과 함께 후속품에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는 영화광들이 꽤 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난 예술적 미학을 겸비한 사람이 아닌가보다. 사실 메멘토가 그닥 가깝게 와닿지를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그저 영화를 재미로만 본다는거에 큰 중점을 둔 시기에 그러하였으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아무리 재미있다 한들 뒤섞여버린 시간과 기억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주인공의 사연을 따라가니 허망한 결말만이 나올뿐이었다.
그런데 프레스티지를 보고 난 지금 난 놀란감독이 왜 천재라는 칭호를 얻었는지를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끈질기게 나에 대한 물음을 한 감독이 얼마나 될까? 매트릭스가 세계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했듯 프레스티지 또한 나에 대한 물음을 끈질기게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탁월한 연출력까지...
이번 프레스티지에 대해 많은 불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화를 보는 시선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악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만 보시라. 그것이 단지 울버린과 배트맨의 싸움으로만 보이는지를 말이다.
단지 나에 대한 물음이 아니더라도 끝없는 집착에의 요구로 인해 자기 파멸로 이어지는 두 인간의 욕망로망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말이다.



"Are you watching closely?"
잘보고 있나요? 보는것에 집착하는 순간, 보고싶은것만 보는 순간 중요한걸 놓쳐버리게 되지요.

이 영화를 가장 재미없게 보는 방법은 반전을 기대하며 교묘한 연출실력을 기대하는 것일것이다. 뒷통수를 후려쳐 까무러칠 정도의 반전을 기대하며 '설마설마..' 하는 순간 놀란감독의 트릭에 걸리는걸지도 모른다. 과연 제대로 잘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자신의 인생목표에 모든것을 건 두남자가 욕망과 질투로 인해 자기파멸로 이어지는 과정과 특히나 꿈을 파멸시킬만한 라이벌의 존재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것인지, 그리고 그 영향을 밑바탕 삼아 각 개인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방식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가 이영화에서 보여진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뒷담이 서늘해지며 한순간 오싹함을 느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는 이유가 말이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씁쓸했던 건 나름 친했던 이 두사람의 과거의 모습이 생각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모든걸 다 잊고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사이좋게 나아갔으면 조금은 행복했을법도 한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걸 보면 말이다. 잘생긴 두 남정네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내다가 서로는 물론 자기자신에게조차 흠집을 내는데 안타까울수밖에, 그리고 그게 꼭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보여서 더욱더 무서울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때 이영화가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완전성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인한 자기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사실 라이벌의 존재가 다만 개인의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로서만 존재할때는 문제시 될 수가 없다. 각 개인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복인셈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욕망의 길로 돌아서는 순간 각개인에게는 참혹한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셈이다. 욕망에 대한 집착으로 무하한 자기복제를 하는 순간에까지 이르게 된  두주인공. 여러가지 트릭을 통해 자아분열과 자기파멸의 길로 들어서 종국에는 자기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그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가슴깊이 와닿는다. 집착으로 인해 분열된 자아중에서 과연 나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걸까? 결국 누가 나인지조차 자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걸까? 결국 보든은 그런선택 후 잘살았을까?
놀란감독은 매우 탁월한 연출을 한 셈이다. 교묘한 트릭에 대한 연출을 충분히 마지막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조금씩조금씩 숨통을 조여오는 영화 프레스티지는 마지막 컷을 보고나면 찝찝해질 수 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트릭인지를 알 수 없으니 말이다.



>> 이 영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두남자의 간지부터 시작해서 그 세세한 부분까지도요. 사실 극장에서 재관람을 하려했는데 이미 대부분 내려진 까닭에 재관람은 없을듯 합니다. 혹여 디비디가 나온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볼만도 합니다. 사실 한번 본것만 가지고는 이 영화의 모든걸 봤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죠. 몇번 더 보고 곱씹어봐야 조금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어쨋든 다시 건드릴만한 충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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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자주 쓰인 말중 하나인 "무심한듯 시크한"이라는 수식어...
사실 이 말에 어울리는 영화감독이 있으니 그가 바로 장진이고 그에 걸맞는 배우고 있으니 바로 정재영이다. 무심한듯 시크한 스토리에 그들만의 독특한 개그를 버무려 놓는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자칭, 타칭매니아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의 친척언니 또한 그 매니아에 합류한지 꽤 된 사람이었기에 오랜만에 개봉한 둘의 합작품 "거룩한 계보"를 보고왔다. 우선 그 영화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역시나 장진의 개그는 녹슬지 않았다는 것고 또 "전작과는 다른 스타일의 영화가 나왔구나" 였다.
개인적으로 장진영화하면 약간 얼빵한듯한 캐릭터와 더불어 무심한듯 시크한 스토리속에 녹아있는 장진만의 언어유희를 최대한 살린 개그가 뒷통수를 살짝 후려쳐주면 픽 하고 웃음지으며 정신을 놓고있는 동안에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는 그만의 가공할만한 연출내공이 떠오른다. 그게 장진식의 영화적 수다였다.
그런면에서 볼때 이번영화 거룩한 계보는 장진의 수다가 많이 자제된편이다. 물론 전라도 사투리를 바탕으로 그만의 언어유희가 빛을 발하지만 캐릭터를 통한 수다보다는 캐릭터의 내면에 중점을 둔듯하다.  그만의 수다를 끝마치고 나서 한동안 비쳐지는 주인공들의 클로즈업숏은 입을 통한 말과 다른 묵직함을 준다. 바로 이 지점이 전작과 겹치면서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모두들 알고있다시피 거룩한 계보는 속된말로 장진의 조폭영화다. 엉뚱한 이야기의 상황속에서 피어나는 알듯모를듯한 인간애가 어떻게 조폭영화에서 장진식으로 연출되는가가 이번영화의 가장 큰 관심사였을 것이다. 사생결단식의 찌들대로 찌든 영화냐 가문의 위기와 같은 개그지향의 가벼운 대중코드의 영화냐, 아니면 역시나 장진식의 조폭영화냐에 대해서 귀추가 주목되었을진데 장진은 역시나 인간관계의 거룩한 계보를 자신의 식대로 보여주었다.


치성을 둘러싼 조직들과 주중, 순탄과의 우정....
거룩한 계보와 비슷한 영화 하나를 꼽자면 곽경택 감독의 "친구"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있다. 전자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조폭계에 발을 들이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남성들간의 우정과 의리를 그린다는 점에서 후자가 조폭이라는 조직내에서 오른팔이 보스를 상대로 조직에 맞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영화와 다르게 거룩한 계보에는 각잡힌 "가오"가 없다. 아니 여타의 조폭영화와 다르게 가오가 없다. 거룩한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주먹질을 하고 칼질을 하지만 독기가 없다. 되려 사기를 당할것 같이 멍청해보이기까지 한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조폭이 아니라 보험에도 가입하는 적당히 얼빵하고 인간적이면서 감성적인 조폭이다. 그리고 그 감성적인 조폭의 두 계보가 바로 교도소내의 순탄과 사랑과 평화 조직이고 교도소밖의 보스와 주중의 조직이다. 이 두 조직을 통해 그 거룩한 관계의 계보를 보여준다.
전자는 바깥세계에 대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신의로 형성된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의 조직이다. 그걸 대표하고 있는게 순탄이다. 순탄은 무뚝뚝함속에서 우정과 믿음에 대한 신의를 최대한 보여준다. 조직에 대한 복수를 순탄을 비롯한 사랑과 평화의 조직이 도와주는걸 보면 말이다. 반면에 후자는 상하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 조직이다. 그걸 대표하고 있는게 주중이고 말이다. 주중과 조직은 치성에게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여건으로 인해 치성에게 배신의 칼날을 찔러넣는다. 그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물이 주중이다. 주중은 옛친구와의 우정도 소중하지만 현조직과의 신뢰관계도 소중하다. 그래서 치성이 조직의 칼날과 마주하기 전에 자기선에서 끊고싶어하고 끝까지 치성을 감싸준다. 교도소 밖 관계들의 배신으로 교도소 내의 탄탄한 조직이 형성되면서 관계의 거룩한 계보는 감독의 입에서 나온말처럼 "들키지 않는 우정"으로 표현되어진다.



이렇듯 거룩한계보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와 그 사이의 계보를 보여주며 장진만의 인간관계 방식이 나타난다. 아마도 클로즈업숏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유 또한 그 계보가 보여지길 원한 감독의 연출이 아닐까 한다. 수다를 통한 드러냄보다는 클로즈업숏을 통한 묵직한 감정이 전해지길 바랬을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중의 마지막 한발 권총의 "들키지 않는 우정"보다도 치성의 증오와 연민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친 "꼬라지가 그게 뭐여"라는 대사가 더 묵직하게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덜 뻔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우정보다도 허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의 배신이 더 다가왔던건 아마도 그때문이리라. 꼬이고 꼬인 인간사에서 들키지 않는 않는 우정이 가진 쑥스러움보다도 동정어린 한마디가 내뱉는 외침이 더 익숙한건 단지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일까?



덧...순탄으로 나오는 류승용씨가 아주 멋집니다. 이 사람 역시 유부남인데다가 얼굴도 크지만 좋은걸 어찌합니까. 이 사람 특유의 뚝심과 묵직함이 좋습니다. 그리고 멋진목소리가 정말로 좋습니다.
아, 그리고 이 영화 강우석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는걸 아십니까? 강우석과 장진이 공동명의 제작사 하나를 차렸더군요. 필름수다는 아마 그 제작사에 포함되는듯 싶구요. 그래서 거룩한 계보 후반 편집작업에 감우석씨가 참여를 했다더군요. 전 처음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둘의 친분관계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서요. 으흠.....


덧2... 최근에 들어서는 장진감독의 영화를 챙겨보고 있기는 하지만 왜 챙겨보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영화에서 소소한 재미는 느끼지만 마음을 움직일만한 건 찾질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에 아직 내공이 부족한거라고 결론짓고 있기는 하지만 미심쩍은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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